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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전쟁 당시 미.일 함재기 분석

태평양 전쟁 당시 미.일 양국의 함재기 규모와 함재기의 성능. 항공 전력 규모 미300 vs 일400 🔀1941년 진주만 공격 당시 미군은 300여 대의 함재기를 보유함. 이 중 진주만 기지에 주둔하고 있던 함재기는 238대. 🔀1941년 진주만 공격 당시 일본군은 400여 대의 함재기를 보유함. 이 중 진주만 공습에 참가한 함재기는 360대. 이후 1945년 일본이 항복을 할 때 미1,200 VS 200. 🔀미군은 1,200여 대의 함재기를 보유함. 🔀일본군은 200여 대의 함재기를 보유함. 분석: 당시 미국의 막강한 산업 역량을 볼 수있는 대목임. 미.일 양국의 함재기 성능 비교. 미군의 함재기는 일본군의 함재기보다 일반적으로 성능이 우수했음. 미군의 함재기는 항속거리가 길고, 무장과 전자 장비가 더 뛰어났음. 미군은 항공모함의 갑판이 더 넓어 여유가 있었다. 함재기의 탑재량이 더 많았다. 일본 항모는 상대적으로 협소함 갑판 하부 무장 창이 협소함. 태평양전쟁 당시 대표적인 함재기 미군 함재기 🦢 F4U 콜세어: 1942년부터 실전 배치된 미군의 주력 함재기. 뛰어난 항속거리와 기동성이 우수함. 🦢 F6F 헬캣: 1943년부터 실전 배치된 미군의 주력 함재기. 콜세어보다 성능이 다소 떨어졌지만 생산성이 높았음. 🦢 TBF 어벤저: 뇌격기. 강력한 뇌격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 SB2C 헬다이버: 폭격기. 뛰어난 폭격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일본군 함재기 🦢 A6M 제로센: 1940년부터 실전 배치된 일본군의 주력 함재기. 뛰어난 기민성 가벼운 회전성. 🦢 D4Y 수직꼬리: 1941년부터 실전 배치된 일본군의 주력 함재기. 제로센보다 성능이 다소 떨어졌지만 생산성이 높았다. 🦢 B5N9 뇌격기: 뇌격기. 뛰어난 뇌격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 B6N2 폭격기: 폭격기. 뛰어난 폭격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분석 태평양 전쟁 초반 일본군은 미군보다 함재기의 규모와 성능에서 우위를 점했다. 이로 인해 일본군은 진주만 공격, 웨이크섬 전투, ...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 총전력 규모

  1941년 12월 7일 진주만 공격 당시 일본군의 총전력 규모. 함대: 11개 함대, 700여 척의 함선 전함: 10척 야마토, 무사시, 나가토, 후소, 야마시로, 히에이, 키리시마, 콩고, 후루타카, 히류 항공모함: 6척 아카기, 가가, 쇼카쿠, 즈이카쿠, 히류, 소류 순양함: 22척 구축함: 110척 잠수함: 63척 이 중 진주만 공격에 참가한 전함은 야마토, 무사시, 나가토, 후소, 야마시로, 히에이, 키리시마, 콩고, 후루타카, 히류, 총 10척. 전함의 규모 일본군의 전함 세 종류. 순양함급 전함: 콩고급, 후루타카급 전함급 전함: 나가토급, 야마시로급, 히에이급, 키리시마급 슈퍼 전함: 야마토급, 무사시급 순양함급 전함은 순양함과 전함의 중간 크기로, 주포의 구경은 356mm이다. 전함급 전함은 주포의 구경이 406mm로 순양함급 전함보다 크다. 슈퍼 전함은 야마토급과 무사시급으로, 주포의 구경이 460mm로 전함급 전함보다 크다. 진주만 공격에 참가한 전함 중 순양함급 전함은 콩고급 2척, 후루타카급 1척. 전함급 전함은 나가토급 2척, 야마시로급 1척, 히에이급 1척, 키리시마급 1척. 슈퍼 전함은 야마토급 1척, 무사시급 1척. 진주만 공격의 전함 규모 진주만 공격 당시 일본군의 전함은 총 10척이다. 이 중 슈퍼 전함은 2척, 전함급 전함은 4척, 순양함급 전함은 4척. 참고 슈퍼 전함인 야마토급과 무사시급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전함이다. 미국의 전함보다 훨씬 강력했다. 전함급 전함인 나가토급, 야마시로급, 히에이급, 키리시마급은 미국의 전함과 비슷한 수준의 전투력을 가지고 있었다. 순양함급 전함인 콩고급과 후루타카급은 미국의 순양함과 비슷한 수준의 전투력이다. 진주만 공격은 일본군이 일본 해군의 전력을 집중하여 미군의 태평양 함대를 기습 공격해서 완전 괴멸 하려 했지만 큰피해를 입히긴 했어도 상당 수준 건재 한다. 이 공격으로 미군은 18척의 전함, 109척의 항공기, 2,403...

진주만 공습 때 미 태평양 총 전력 규모

  진주만 공습 당시 미군의 태평양 주둔 총 전력 규모. 1941년 12월 7일 진주만 공습 당시 미군의 태평양 주둔 총 전력 규모. 함대: 6개 함대, 195척의 함선 전함: 18척 아리조나, 캘리포니아, 웨스트 버지니아, 메릴랜드, 오하이오, 네바다, 펜실베니아, 텍사스, 아칸소, 콜로라도, 뉴욕, 워싱턴, 펜실베이니아, 와이오밍, 메사추세츠, 노스 캐롤라이나, 테네시 항공모함: 9척 렉싱턴, 요크타운, 벙커힐, 에식스, 요크타운, 엔터프라이즈, 사라토가, 레인저, 호넷 순양함: 62척 구축함: 117척 잠수함: 56척 이 중에서 진주만 기지에 주둔하고 있던 함선 규모. 전함: 9척 아리조나, 캘리포니아, 웨스트 버지니아, 메릴랜드, 오하이오, 네바다, 펜실베니아, 텍사스, 아칸소 항공모함: 4척 렉싱턴, 요크타운, 엔터프라이즈, 사라토가 순양함: 8척 구축함: 39척 잠수함: 11척 진주만 공격으로 인한 미군의 피해. 전함18척, 항공기 109대, 2,403명의 사상자. 보유 전함 상세 순양함급 전함: 텍사스급 2척, 뉴욕급 1척, 펜실베이니아급 2척, 콜로라도급 2척, 와이오밍급 2척 전함급 전함: 네바다급 2척, 아칸소급 2척 슈퍼 전함: 콜로라도급 1척 보유 항공모함 렉싱턴급 2척, 요크타운급 4척, 엔터프라이즈급 1척, 사라토가급 1척 보유 순양함 중순양함: 뉴올리언스급 5척, 펜실베이니아급 2척, 애틀란타급 4척, 캐롤라이나급 2척 경순양함: 클리블랜드급 22척 보유 구축함 구축함: 폴라리스급 7척, 브루스터급 10척, 스프링필드급 8척, 푼스턴급 2척, 벤슨급 10척, 플레처급 10척 보유 잠수함 S급 잠수함: S-1급 6척, S-2급 8척, S-3급 6척, S-4급 6척 V급 잠수함: V-1급 1척, V-2급 1척, V-3급 1척, V-4급 1척 R급 잠수함: R-1급 1척, R-2급 1척, R-3급 1척, R-4급 1척 T급 잠수함: T-1급 1척, T-2급 1척, T-3급 1척, T-4급 1척 일본군의 진주만 기습 공격으로 미군...

천우신조(天佑神助)로 살아 남은 항공모함

진주만 공습 당시 미국에는 7척의 항공모함이 있었다. 이 중에서 4척이 진주만 공격으로 침몰하거나 대파되었고, 3척은 살아남았다. 일본 군부에서는 미 해군이 보유한 7척의 항공모함이 하와이 진주만에 전부 귀항 했을 때 공격한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막상 공격을 하고 보니 3척이나 보이지 않았고 한척은 가까스로 찾아 낸 엔터프라이즈 호 인데 격침 시키지 못했기 때문에 지휘부에선 미래의 전운을 예측했을 것으로 본다. USS엔터프라이즈 연관이미지 글 제목처럼 천우신조(天佑神助)로 살아 남은 항공모함 살아남은 항공모함 3척. USS 엔터프라이즈 엔터프라이즈는 진주만 공격 당시 하와이 외곽에서 훈련 중이었다. 공격을 받긴 했어도 무사히 귀항하여 수리를 받았다. 엔터프라이호는 이후 미드웨이 해전, 과달카날 전역, 필리핀 전역 등 태평양 전쟁의 주요 전투에 참가하여 최선을 다하며 일본에게는 설욕전을 펼친다. USS 호넷 호넷은 진주만 공격 당시 하와이에 있었지만 기적적으로 공격을 받지 않았다. 이후 과달카날 전투에서 일본군의 공격을 받아 격침된다. USS 레인저 레인저는 진주만 공격 당시 대서양에서 작전 중이었다. 진주만 피격 후 태평양으로 급히 이동하여 과달카날 해전, 필리핀 해전 등에서 활약한다. 진주만 공격으로 인해 미국은 태평양에서 자유롭지못했고 주도권까지 잃을 위기에 처한다. 하지만 살아남은 3척의 항공모함은 미군의 반격을 위한 중요한 발판이 된다. 항공모함을 금방 찍어 낼 수도 없으니 미 해군 지휘부는 한치의 실수도 없는 치밀한 계획과 조심스런 작전으로 이 항모로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낸다. 새 창에서 열기 #USS엔터프라이즈,#USS호넷 #USS레인저,#진주만공격,#진주만공습살아남은항공모함, Pacific War L ook back

태평양 전쟁의 발발(시작)

1941년 12월 7일 일요일 조용한 아침, 태평양 미국의 하와이 주 오아후 섬의 진주만은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군인들은 주말 휴식을 취하고 있었고, 주민들은 여느 휴일처럼 일상적인 일을 하고있었다. 오전 7시 55분 아름다운 군사기지 오하후 섬은 아비규환으로 지옥처럼 변한다, 철저한 사전 준비를 한 일본 해군의 항공모함 6척에서 출격한 400여 대의 함재기가 완전 무장을 하고 진주만에 도착한다. 공격이 시작될 때 일본은 선전포고 없는 상태로 기습 공격한 것이다. 일본군은 기습 공격을 계획하고 치밀한 작전 계획대로 실행하지만 , 미군은 전혀 눈치 채지 못했고 대비하지 못한다. 뒤에 밝혀진 사실로 섬에 처음으로 설치한 레이더에 새떼처럼 많은 영상의 타겟들이 보였고 이를 보고했으나 처음 설치한 이 기계의 신뢰성 때문에 유의미한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 뼈아픈 교훈으로 남은 일이 밝혀졌다. 일본의 무장 함재기들은 진주만에 정박한 거의 무 저항 미군 함선과 기지를 향해 폭탄과 어뢰를 마음껏 퍼부었다. 미군과 주민들은 큰 혼란에 빠진 상태로 일본군의 공격에 미미한 대항을 했지만 일방적으로 무참하게 당한다. 일본 무장 공격기들의 일방적인 공격은 30분 동안 계속되었다. 30분 동안 받은 피해는 엄청난 규모이다. 진주만 공격 이미지. 태평양전쟁발밯 지주만 공격으로 입은 피해 규모 * 미군의 함선 12척 침몰하거나 대파 손상. * 188대의 전투기가 격추되거나 대파. * 미군 병사 2,335명과 민간인 68명이 사망. 단 30분간의 계획된 공격으로 일본은 엄청난 전과를 올렸고 미군은 하와이 주둔 군사력이 괴멸된 것이다. 일본의 계획은 단 한번의 공격으로 미 해군을 재기 불능으로 만들려 했지만 엄청난 전과에도 불구하고 미국을 정신차리게 하고 말았다. 이 진주만 공격은 미국을 전쟁에 끌어들이게 된것이다. 이후 미국은 1941년 12월 8일 일본에 공식적으로 선전포고를 하고, 태평양 전쟁에 참전한다. 당시 미국인들의분노는 극에 달했고 애국심을 고취시키...

일본의 군부 쿠데타

일본 군부 쿠데타 일본 군부 쿠데타는 1936년 2월 26일 일본에서 발생한 군부 쿠데타이다. 쿠데타를 주도한 것은 일본 육군의 청년 장교들이었는데, 그들은 일본의 정치를 재편하고, 대륙 침략을 추진하기 위해 쿠데타를 일으켰다. 쿠데타는 2월 26일 새벽, 도쿄의 주요 정부 기관을 장악한 청년 장교들이 시작되었다. 그들은 총리, 내각 장관, 정치인, 재계 인사 등을 암살하거나 구금했다. 그러나 쿠데타는 2월 29일, 정부군의 진압으로 실패로 돌아갔다. 쿠데타의 실패로 청년 장교들은 처형되거나 투옥되었지만, 쿠데타는 일본의 군부 세력의 영향력 강화에 기여했다. 쿠데타 이후, 군부는 정부에 대한 영향력을 더욱 강화하여, 일본의 정치를 장악하게 되었다. 일본 군부 쿠데타의 원인은 크게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일본군부 젊은장교 구테타 군부의 정치 개입 1930년대 중반부터 일본은 군부 세력이 정치에 개입하기 시작하여 점차 세력을 확대해 나갔다. 이는 경제 불황과 사회 불안 속에서 군부가 일본의 자주성을 지키고 대륙 진출을 이루기 위한 움직임이었다. 국수주의의 확산 1930년대 일본 사회에서는 국수주의가 확산되었다. 이는 경제 불황과 사회 불안 속에서 일본의 자주성을 지키고 대륙 진출을 이루기 위한 움직임이었다. 정치적 불안정 1930년대 일본은 정치적 불안정으로 인해 정부의 권위가 약화되었다. 이는 군부가 정치에 개입하기 위한 기회를 제공했다. 일본 군부 쿠데타는 일본의 역사에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쿠데타의 실패로 청년 장교들은 제거되었지만, 쿠데타는 일본의 군부 세력의 영향력 강화에 기여하여, 일본이 태평양전쟁을 일으키는 데 중요한 배경이 되었다. 일본 군부 쿠데타 관련 이미지. #일본쿠데타, #일본쿠테타 #국수주의 Pacific War Look back